본문 바로가기
재미

세계부자순위 (포브스 선정)

by 에 디 터 2012. 11. 27.

세계부자순위 (포브스 선정)

 

 

 

 

 

 

 

 

1위 카를로스 슬림

1940년 레바논계 멕시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슬림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40만 달러를 밑천으로 26세 나이에 부동산 사업에 진출했다. 1982년 멕시코 경제가 위기에 처해 주가가 폭락할 때 부실기업을 싼값에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고, 1990년 유선통신사 텔레포노스 데 메히코(텔멕스)의 인수를 통해 부 축적의 기반을 다졌다.

 이후 멕시코 경제가 살아나면서 텔멕스의 주가 상승과 함께 재산이 불어났고, 멕시코 전화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텔멕스를 통해 매년 60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텔멕스는 멕시코 유선전화의 92%를 공급하고, 슬림의 무선이동통신회사인 텔셀은 멕시코 내에서 70%의 시장점유율을 점하고 있다. 그는 시장을 더욱 확대하여 남미 최대 이동통신회사인 아메리카 모빌을 비롯해 금융ㆍ방송ㆍ타이어ㆍ호텔ㆍ외식 등 멕시코 경제에 있어서 거의 모든분야에 진출한 카르소그룹의 명예회장이 됐다.

 

 

 

 

2위 빌 게이츠

본명은 윌리엄 헨리 게이츠 3세(William Henry Gates III)이며, 1955년 미국 워싱턴주(州) 시애틀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7년 레이크사이드스쿨(Lakeside School)에 입학하면서부터 컴퓨터와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이곳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동 창업자인 폴 앨런(Paul Allen)을 만났다. 1973년 하버드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다가 수학과로 전과하였다.

1974년 폴 앨런과 함께 다트머스대학교에서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베이직(BASIC)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소형 컴퓨터에 쓰일 새로운 버전(Altair Basic)을 개발한 데 이어 1975년 대학을 중퇴하고 뉴멕시코주(州) 앨버커키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설립하였다. 1981년 당시 세계 최대의 컴퓨터 회사인 IBM사로부터 퍼스널컴퓨터에 사용할 운영체제 프로그램(후에 DOS라고 명명됨) 개발을 의뢰받은 것을 계기로 지금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1995년 8월 '윈도 95'를 출시함으로써 퍼스널컴퓨터(PC) 운영체제의 획기적 전환을 가져 왔으며, 이는 발매 4일만에 전세계적으로 100만 개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PC의 급속한 확산과 더불어 세계 컴퓨터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아 《포브스 Forbes》지에서 선정하는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13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고, 2009년에도 1위에 올랐다. 2008년 6월 27일 자선활동에 전념하기 위하여 33년간 이끌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경영에서 손을 떼고 공식 은퇴하였다.

 

 

 

 

 

3위 워렌버핏

미국의 주식투자가.

 

1930년 미국에서 증권 세일즈맨인 아버지밑에서 태어난 워렌 버핏은 콜롬비아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평가투자(Value Investing)라고도 불리는 과학적 주식투자 방법을 세계금융계에 소개한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1894~1976)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1956년 100달러로 주식투자를 시작, 미국 최고의 갑부인 워렌 버핏은 전설적인 투자의 귀재로 평가받고 있다.

1961년 dempster mill manufacturing co. 회장이 되었으며, 1965년 버크셔 헤더웨이(berkshire hathaway)를 인수했는데, 1967년 소형 보험회사 2개를 매입하면서 투자지주회사로 변모하게 된다.

버크셔 헤더웨이는 그 후 bluechip stamp, see's candy, buffalo news, geico insurance 등을 인수했다.

워렌 버핏은 가치있는 주식을 발굴해 매입하고 이를 오랫동안 보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90년대 미국에 신경제와 인터넷 기술주가 급등할 때 "미국 주식은 80년대의 일본과 같이 버블로 터져 버릴 것이다."라는 버블론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 후 인터넷 주와 신경제에 대한 거품론이 확대되고 나스닥 시장이 하락하게 되자, 많은 인터넷 주의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내재가치만을 따져 투자종목을 선별했던 워렌 버핏의 평범한 투자전략이 다시 인정받고 있다.

버핏은 뉴욕에서 2천Km 이상 떨어진 자신의 고향 내브래스카주 오마하를 거의 벗어나지 않지만 주식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는다 해서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이라고도 불린다. 버핏은 자신이 운용하는 벅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 때나 얼굴을 내밀 뿐 거의 외부 접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4위 베르나르 아르노

베르나르 아르노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기업가로 루이뷔통, 디오르, 펜디를 비롯한 50여개의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세계적으로 가장 큰 명품 업체인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 그룹의 창업자이자, 회장 겸 최고경영자이다. 베르나르 아르노는 2012년 순자산 410억 달러로 《포브스》에서 세계 4번째, 유럽 최고의 부자로 선정 되었다.

 

1949년 프랑스의 북부 루베에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베르나르 아르노는 어릴때부터 똑똑하다고 소문난 수재로, 프랑스의 명문대학 중 하나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조기 진학했을 정도로 학업능력이 뛰어났다(에콜 폴리테크니크는 ENA(국립행정학교)와 함께 프랑스의 정·재계 주요 인물들을 배출한 명문중의 명문이다). 1971년 공학 학위를 취득하며 대학 졸업 후,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설 회사에 입사했다. 여기서 그는 충실히 경영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1976년 사업 수완이 좋았던 그는 입사 5년만에 아버지를 설득해 사업 일부를 4000만 프랑에 매각하고 부동산 사업에 집중해 큰 성과를 냈다. 이어 1979년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사 대표직을 맡게 된다.

1981년 사회당 출신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에 선출되자 돌연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자유스러운 그의 성향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플로리다로 떠나 팜비치에서 콘도개발로 상당히 많은 돈을 모았다. 이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부가 경제정책 방향을 보수적으로 바꾸자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5위 아만시오 오르테가

스페인 최대의 생산유통채널 브랜드인 Zara는 물론 여러 브랜드를 가진 Grupo Inditex를 설립한 창업주. 철도공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했음. 오르테가가 1985년 세운 패션 유통 업체 인디텍스(Inditex) 그룹은 자라를 비롯해 캐주얼복 풀앤베어(Pull&Bear), 속옷 브랜드 오이쇼(Oysho) 등 여덟 개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2012년 현재 인디텍스 그룹은 전 세계 매장만 5,600여 개, 직원이 11만명, 디자이너만 600명에 달한다. 오르테가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인디텍스 그룹에서 만드는 모든 제품의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꼼꼼히 챙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체체뿐만 아니라 투자는 은행, 가스, 부동산, 여행 등에 분산되어 있고 유럽 전역에 영향력이 크다.

 

 

 

 

 

6위 래리 앨리슨

오라클은 비즈니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시스템을 개발, 판매하는 다국적 회사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본사가 있다. 포춘 100대 기업을 포함해 145개가 넘는 나라에서 37만 여 명의 고객이 오라클의 제품을 사용한다. 2007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IBM에 이어 소프트웨어 분야 매출 3위였으며, 2010년 현재 전 세계에서 10만 5000명의 인원이 일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은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인 오라클 DBMS(DataBase Management System)로 현재 유닉스 환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품이다. 또한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인 ERP, 공급망 관리 시스템인 SCM, 고객관계관리 시스템인 CRM 소프트웨어도 개발한다.

 

래리 엘리슨의 유년기는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뉴욕 브롱크스에서 19살의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9개월째 폐렴에 시달리게 되고 양육을 감당할 수 없었던 친모는 결국 시카고에 사는 삼촌에게 아들을 입양 보내게 된다. 그 후 친모는 레리가 48세가 되던 해까지 만나지 못했다. 시카고 중산층 유대인 양부모 밑에서 엘리슨은 비교적 무난한 유년기를 보내게 된다. 일리노이 어반 샴페인 대학을 다닌 엘리슨은 총명하지만 산만한 학생이었다. 결국 대학 2년 기말 고사를 앞둔 엘리슨은 양어머니의 죽음으로 대학교를 자퇴한다. 그 후 시카고 대학에서 1학기를 다니는 동안 컴퓨터 공학을 처음으로 배우게 되고 이것이 현재 오라클을 만들게 될 베이스를 제공하게 된다.

 

1970년대 엠펙스 코퍼레이션에서 CIA 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프로젝트를 맡은 그는 프로젝트 명을 ‘오라클’로 명명하고 1977년,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회사인 ‘Software Development Lab’를 창립하고 후에 ‘오라클’로 개명을 하게 된다. IBM 이 자사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의 코드를 공개하기를 거부하자 엘리슨은 독자적인 ‘ORACLE 2’ 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회사를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IBM이 1970년에 고안한 중앙정보 시스템 ‘관계형 데이타베이스(Relational Database)’는 하드웨어의 미개발로 실용화 되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정보를 한군데 저장하여 정보교환 및 수집을 쉽게 할 수 있는 이론을 제공했다. IBM이 이를 사장시키면서 발전, 보충에 늑장을 부릴 때 엘리슨은 이 프로그램 개발과 실용화에 매달렸다. 그들의 기술진은 정보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이 분야에서 세계 최대의 회사가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는 1983년 회사이름을 오러클(Oracle)로 바꾸고 ‘오러클 버전 3’ 프로그램을 출시하여 본격적으로 시장을 개척했다. 오러클 사는 사업이 계속 번창, 1986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주식을 공개하기 바로 전날 기습적으로 주식을 공개하여 2천7백만 달러의 주식가치를 보유했다. 그중 엘리슨의 지분은 39%였다.

 

 

 

 

 

7위 에이케 바티스타

그가 이끌고 있는 EBX그룹은 OGX(석유·가스) OSX(조선) MMX(광산)  LLX(물류) MPX(에너지) 등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브라질 대표 기업이다. 싯가총액은 50조원을 넘는다. 바티스타 회장은 포브스 선정 세계 1위인 멕시코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 회장에 대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슬림을 반드시 제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해 브라질의 열악한 화물수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6억달러(약 3조원) 규모의 대형 항구 건설에 직접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8위 스테판 페르손

스테판 페르손은 (1947년 10월 4 년생) 스웨덴어 비즈니스 거물이다. 그는 아버지 Erling 페르손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패션 업체 H & M, 현재 회장이자 주요 주주이다. 스테판은 1982 년에 회사를 인수할 당시 1998까지 자사의 CEO로 재직했습니다. 포브스 잡지에 따르면, 페르손 그에게 스웨덴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과 세계에서 8 번째 가장 부유한 사람을 만들 월 2012 미국 26,000,000,000달러 가치 그물을했습니다. 스테판은 또한 스웨덴어 기술 회사 육각의 상당한 지분을 소유하고, 런던, 파리와 스톡홀름 민영 속성. 그는 IF Djurgardens의 후원자이며, 클럽을위한 기반을 공동 자금입니다. 그는 또한 Linkenholt의 작은 영어 마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페르손이 스톡홀름 대학에 참석. 그는 스톡홀름, 스웨덴에 살고과 캐롤린 데니스의 페르손 결혼한다. 그들은 세 명의 아이가. 2009 년 그의 아들 칼 - 요한 페르손은 H & M.의 사장 및 CEO로 밀어냈다.

 

 

 

 

9위 리자청

리자청은 홍콩의 최대의 기업 집단 장강실업 그룹의 창시자이다. 홍콩과 동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며, 중국인 중 세계 최대의 부자이다.

 

 

10위 칼 알브레히트

1948년 테오 알브레히트 형제와 함께 할인점 알디(Aldi) 창업

칼 알브레히트 인터네셔널 회장,컨설턴트, 미래학자, 연설가

Performance Research Associates의 설립자

댓글